1972년 마스터 디스틸러였던 찰스 빔이 건강학화로
은퇴하자 몇년동안 증류소의 유지 관리자였던
딕 스톨이 다음 마스터 디스틸러가 되었다
딕 스톨은 와일드 터키에서 계약 증류를 하기도 했으며
팟 스틸과 컬럼식 증류기를 동시에 사용해 증류하는
희귀한 기술을 터득한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고한다
당시 60~80년 대에는 믹터스의 라벨이 붙은 대부분의 제품은 주전자 모양의
흰색 도자기에 위스키가 담겨서 팔렸다
선물이나 수집품으로 좋았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고한다
또한 리미티드제품으로 23k 금 도금을 한 제품 또한 출시하였는데
무려 500달러라는 거금으로 출시
2000개를 생산하고 그 중 893개가 판매 되었다.
일정 기간동안 판매한 뒤 팔리지 않은 제품을 모두 폐기함으로서
리미티드 제품이라는 마케팅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에서 사업은 어려웠고 1983년에는 파산신청을 하게 되었다고한다
1989년에는 생산이 완전히 중단되었다
이후 관리를 안하던 증류소는 지역 주민들이
위스키 애호가들의 타겟이 되어 많이 있던 재고품들이
도난당하는등의 수난을 당한다
지역신문에 따르면 증류소 바깥 도로에는 밤에 술을 마신 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사람들이 던진 깨진
술병들이 널려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수난기에 증류소의 증류기 조차도 무사하지 못했으니.....
데이비드 빔이라는 사람이 믹터스의 증류기를 경매로 구입하여
자신의 차고에 15년간 보관하게 된다
이후 그는 증류기를 톰 허스브룩에게 팔았고
2010년경 톰은 원래 오하이오 주 차그린 폴스에서 증류를 시작하여
이 증류기로 위스키를 만들 생각이었다고한다
이 때 설치와 사용법을 가르쳐 준게 딕스톨이었다고함
2011년 톰 허스브룩은 한통의 전화를 받게되는데 바로 조 마그리오코의 전화였다
여기서 이야기는 조 마그리오코 라는 사람이
갑툭튀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조셉 마그리오코(joe magliocco)라는 변호사는 있었는데
위스키 애호가였던 그는 최초의 호밀 위스키 브랜드를 살리고자 하였다
그러던 중 로펌에 문의하여 오늘 날 기준으로 믿을수 없는
믹터스 상표를 245 달러에 구매할 수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되었다
믹터스에서 젊은 시절에 위스키 영업을 하면서 인연이 있었던 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는 믹터스 상표권을 1997년에 완전히 인수하였다
(조, 스티브 지글러, 딕 뉴먼과 함께 인수)
이 후 여러 자문을 들고 그는 믹터스가 원래 있던 펜실베니아가 아닌
버번의 본고장 켄터키에서 최고의 버번들과
경쟁하고자 켄터키로 증류소를 옮기게 된다
그는 1997~1999 년에는 증류소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 미국은 위스키보다는 샤르도네 와인이나 보드카를
선호하던 시절이었고
켄터키의 각 증류소에 마침 팔리지 않던 재고 위스키가 그것도 10년 이상
숙성되어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위스키들을 매입하기로 결정한다
(디아지오의 전신이었던 유나이티드 디스틸러스)
이때 Julian Van Winkle (패피할아버지의 조카 손자정도?)
와 관계를 맺게 되었고
그는 로렌스버그에 병입시설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통해서
믹터스를 생산하기로 한다.
믹터스는 로렌스버그의 병입시설에서
2000~2002년 동안에
믹터스10년 라이와 10년 위스키라는 이름으로 출시하게된다
이병의 뒷면에는 켄터키주 로렌스버그 병입이라는 문구가 있어
현행 10년과 구별된다고한다
2002년 후반까지도 그들은 증류소를 보유하지 않았고 재고가 많은 증류소에서
대량으로 위스키를 구매 후 발매하는 방식을 취했다
NDP (Non-Distiller Producer 직접 증류하지 않고 원액을 사와서 위스키를 만드는 회사)
주로 구입했던 곳이 Schenley 쉔리, Heaven Hill 헤븐힐
브라운포맨의 Early Times 얼리타임즈, Old Forester 올드포레스터 였다고 한다.
이 때 나온 위스키가
Michter's Unblended American Whiskey와
Michter's Single Barrel Straight Rye Whiskey 였다.
(2003년에 출시된 온라인 포럼에서는 리뷰와 추측으로 가득찼고
언블렌디드는 브라운포맨, 라이 위스키는 올드포레스터로 유사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2004~2007년 버번위스키 산업이 증가되면서
점점 많은 증류소의 위스키 재고가 바닥을 치면서
안정적으로 원액을 수급을 할 수 있게 증류소 건설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이미 브라운 포먼과 긴밀한관계를 맺고 있었으므로
그곳과 가까운곳에 증류소 부지를 확보하였다
새로운 증류소를 세우려면 10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 봤기 때문에
2004년부터는 미공개된 켄터키 증류소와 계약 증류를 하기로한다
(공공연한 비밀로 여겨지지만 여기가 우드포드 리저브의 브라운 포맨이다)
2007년에 willie pratt이 브라운 포맨을 떠나서 믹터스에 입사하게됩니다.
프랫은 브라운 포맨에서 일하는 동안 증류, 통제작, 숙성조건을 연구하는(R&D)
팀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믹터스의 자체 증류소를 시작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
믹터스의 핵심 프로세스인 6가지를 설계한게 윌리 프랫으로 생각된다
믹터스 배럴 스트렝스 라이가 2015~1016년에 출시되어
이후 출시된 위스키들을
포함해서 최고로 평가 받게되었습니다
브라운 포맨과 2004년 부터 계약 증류를 시작했으므로
대략 시기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윌리 프랫은 2016년에 믹터스에서 은퇴한다)
2011년에는 루이빌 도심에 있는 건물을 매입하여 리모델링을 하여 증류소 겸 기념품 가게
시음공간등으로 꾸미게 되는데 이것이 Fort Nelson 이다
여기서 다시 톰의 2011년도 조의 전화를 받았던 윗 내용에서
이 믹터스 이야기가 서로 만나게 된다
포트 넬슨에 있는 증류기가 바로 펜실베니아 믹터스 시절에
딕 스톨이 사용했고
데이비드 빔의 차고에 처박혀 있었던 바로 그 증류기이다
당시 소유자였던 톰 허스브렉은
처음에는 안 팔려고 했으나 조의 몇년간의
끈질긴 설득한 끝에 구입하는데 성공합니다.
(감사의 의미로 톰에게 믹터스 위스키를 몇박스를 보냈다고...)
이리하여 믹터스는 계약 증류하던 시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자가 증류하는
증류소로 다시 부활을 알리고 있는 중이다
이런 이야기 외에도 믹터스에 관련된 떡밥이 한두개가 아니긴 하나
일단 큰 그림만 그려도 이렇게 2~3편 나온다
보머거즈 이야기는 나중에 내가 바틀을 구하게 되면
이야기할지도......(못구하면 안해도 됨 이히히힛)
다른 3대장 위스키과 다르게
믹터스는
도수가 낮고
가격대가 다소 높으며
코어 라인업이외의 (배럴 스트렝스, 토스티드 라인업) 구하기란
매우 어려운 현실이지만
현재 생산량도 늘리고 숙성고 창고도 추가 건설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으니 이러한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수
있을거라고 생각된다
과연 믹터스가 버번 3대장의 자리를 위협할수 있을까?
'위스키 및 증류소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셰리캐스크란 무엇인가? 2탄(생산과정,캐스크 종류,보데가) (1) | 2024.09.05 |
---|---|
셰리(sherry cask)캐스크란 무엇인가 (셰리의 정의,품종, 종류) (0) | 2024.09.05 |
믹터스 증류소(Michter's Distillery) TMI (0) | 2024.09.05 |
믹터스 역사 (michter's distillery) 1편 (펜실베니아시절 믹터스, 사워매쉬의 탄생) (2) | 2024.09.05 |
글렌글라사 Glen glassaugh 증류소 이야기 (0) | 2024.09.05 |